월급 200만 원짜리 삶은 너무 잔인하지 않냐는 말을 어디선가 봤을 때, 저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제 첫 월급이 80만 원대였거든요. 2000년대 초, 상업고 3학년에 취업이 되어 첫 출근을 했을 때 받은 돈이 그 정도였습니다. 그게 잔인하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는 게 묘하게 복잡했습니다.
성공팔이가 먹히는 이유, 월급 200의 공포
요즘 SNS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18살에 1억 벌었습니다"라는 식의 영상이 끊임없이 뜹니다. 저도 스크롤을 내리다 그런 영상
앞에서 한 번씩 멈추게 됩니다.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라서요. 고등학생이 7개월 만에 2억을 벌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 누구나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영상을 누르면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방법이 궁금하면 DM 주세요"라는 문구가 나오고, 연락을 하면
12만 9천 원짜리, 혹은 299만 원짜리 강의 링크가 날아옵니다. 강의를 열어보면 내용은 단 하나, 나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구조, 이것이 디지털 다단계입니다. 다단계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여러 단계의 판매원을 통해 유통하면서 하위 판매원의 수익 일부가 상위로 귀속되는 방식인데, 이 경우엔 '강의 파는 영상 만드는 법'이 그 상품입니다.
이 수법이 특히 청소년에게 잘 먹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견기업 대졸 초임 평균이 3,941만 원, 실수령으로 치면 월 290만 원 정도라는 통계가 있습니다(출처: 중견기업연합회). 이게 낮다고 느껴지는 건 아닐 텐데,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연봉 2500만 원은 낮고 1억은 기본이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 간극 속에서 초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처음 시작하는
월급이 아니라, 내 인생의 최고점처럼 느껴지게 되는 거죠...
저도 경리직으로 처음 받은 80만 원대 월급이 낮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때는 회사가 매년 성장했고 월급도 해마다 올랐으니까요. 토요일 오전까지 출근하면서도 그게 당연한 단계라고 받아들였는데, 지금의 20대는 그 단계 자체를 건너뛰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10년치 삶을 지금 당장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저런 성공팔이에 눈이 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극적인 제목으로 조회수를 모은 뒤 유료 강의로 유도하는 방식
- 강의 내용은 다시 동일한 영상을 만들라는 것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됨
- 초임을 인생의 최고점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SNS 분위기가 이 구조에 취약성을 제공
소득대물림의 심화, 개천은 왜 말라가는가
한국은행이 발표한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이슈노트는 꽤 불편한 숫자를 보여줍니다.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이란 부모 소득이 자녀
소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치화한 지표입니다. 이 값이 0이면 부모 소득과 무관하게 자녀가 스스로 결과를 만든다는 의미이고, 1에 가까울수록 부모의 경제 수준이 자녀에게 그대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1971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지금 기준으로 45세에서 55세 정도 되는 분들의 경우 이 수치가 0.11이었습니다. 그런데 1981년에서 1990년 사이 출생 세대로 오면 0.32로 세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저는 83년생이니까 딱 그 경계선 어딘가에 걸쳐 있는 셈인데, 이 숫자를 보면서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20대 때는 제가 번 돈을 제가 썼습니다. 여행도 다니고 이것저것 샀습니다. 자산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고, 그때는 정보도 없었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남의 이야기 같았고,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 건 결혼 이후였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열심히 일하면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자산 상관관계는 소득보다 더 높게 나타납니다. 부모의 자산 순위가 1% 오를 때 자녀 자산 순위가 0.38% 오르는 수준이었고, 81년에서 90년생으로 오면 0.42까지 올라갔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자산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전략인데, 실물 자산, 특히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저 역시 현금만 쥐고 있으면 인플레이션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걸 체감하면서 청약을 통해 집을 마련했습니다. 남편은 건설업에 종사하는데 최근 3년 사이 일감이 크게 줄었고, 저도 회사 일이 한산해지면서 급여가 줄었습니다.
아이들 교육비는 올라가고 40대 중반에 새 직장을 구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현금을 전부 주식에 넣기는 부담스러웠고,
그나마 실물자산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 구조가 특히 심각한 곳은 비수도권입니다. 세대 간 소득 대물림은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계층 이동성이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비수도권은 그 가능성 자체가
좁아지고 있는 반면, 수도권은 여전히 교육과 일자리를 통한 경로가 열려 있습니다. 강남 3구 평균 아파트 가격이 30억에 달하는
지금, 소득만으로 서울 부동산을 따라잡는다는 건 어지간한 고소득자에게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레버리지란 자기 자본 외에 대출 등 외부 자금을 활용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인데,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심리가 이런 구조적 막막함에서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워진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 세대 간 자산 상관계수도 0.38에서 0.42로 높아지는 추세
- 비수도권의 경우 소득 대물림 심화가 더 두드러지는 구조적 문제
- 수도권과 비수도권 임금 격차 확대로 지방 거주자의 계층 이동 기회 감소
부자가 되는 길을 원론적으로 열어 두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이 열려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말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는 걸 제가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자산 운용이나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상황에 맞게 판단하시길 권합니다. 성공팔이에 혹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길 앞에서 다른 출구를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다만 그 출구가 진짜 출구인지, 다단계의 입구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근로소득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