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아파트가 평당 1억을 넘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 솔직히 멍했습니다. 꼬박꼬박 적금 붓고, 월급 아껴가며 내 집 마련 꿈꾸던
시절이 그냥 허상이 됐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그냥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한국은행이 몰래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돈풀기의 구조를 들여다볼수록 제가 느낀 건 허탈함이 아니라 분노였습니다.
스텔스 양적완화, 한국은행이 숨긴 카드
한국은행이 2025년 들어서 RP 매입 규모를 급격히 늘렸습니다. 여기서 RP 매입이란 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의 줄임말로,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7일 또는 14일 단기로 빌려주는 방식입니다. 원칙상 만기가 되면 갚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만기가 되는 날 다시 빌려주기를 반복했습니다. 7일짜리 대출을 끝없이 롤오버하면 사실상 돈을 회수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방식이 바로 스텔스 양적완화, 즉 유사 양적완화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양적완화(QE)란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 국채나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인데,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 QE를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RP 롤오버를 통해 사실상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2025년 1분기에 0.5조원 수준이었던 RP 잔액은 4분기 추정치 기준 6조 5천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는 설마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국고채 단순 매입 1조 5천억원까지 더하면 합산 규모가 8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처음 찍어낸 돈은 은행에서 은행으로 돌면서 신용이 창출됩니다.
이를 통화승수라고 합니다. 통화승수란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 1원이 금융 시스템을 거치면서 몇 배로 불어나는지를 나타내는 배율입니다. 한국의 통화승수는 통상 14 수준으로, 보수적으로 10만 적용해도 총 80조원의 유동성 살포 효과가 발생합니다.
한국은행의 통화량(M2) 추이를 보면 이 추정이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M2란 현금과 요구불예금뿐 아니라 정기적금, 시장형 상품 등 광범위한 금융자산을 포함한 광의의 통화량 지표입니다. 실제로 최근 4년간 M2가 약 15~21% 증가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에버그린 효과, PF 좀비들이 살아남는 이유
돈이 이렇게 많이 풀리면 가장 먼저 혜택을 받는 곳이 어딜까요. 저는 이 질문에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부실 덩어리 PF 시행사들
입니다. 에버그린 효과(Evergreen Effect)란 원래라면 부도가 났어야 할 차주에게 은행이 계속 대출을 연장해줌으로써 마치 건재한 것처럼 장부를 꾸미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이를 좀비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한국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시장이 지금 딱 그 상태입니다.
2022년이 실제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었습니다. 당시 PF 부실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시행사들이 땅을 팔아 원금을 어느 정도 회수하면 정리가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돈을 계속 풀면서 시행사들은 '조금만 더 버티면 금리 내려간다'는
잘못된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게 4년을 버티는 동안 이자가 눈덩이처럼 쌓여서 이제는 공사를 시작할 자금 자체가 없는 깡통
회사가 됐습니다. 한국은행이 희망고문을 한 셈입니다.
이 구조조정 지연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2년 구조조정 시점 PF 부실: 현재보다 훨씬 소규모, 토지 매각으로 원금 회수 가능
- 4년 방치 이후 현황: 이자 누적으로 자본 완전 잠식, 공사 재개 자금 부재
- 에버그린 유지 비용: RP·국고채 매입을 통한 막대한 유동성 공급 지속
- 부작용: 도덕적 해이 심화, 채권 시장 불신 확산
부동산PF 부실채권 규모에 대한 금융감독원 자료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이 확인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금리가 거꾸로 오른다, 시장이 보내는 경고
이론적으로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면 금리는 내려가야 합니다. 돈의 공급이 늘어나면 돈의 가격, 즉 금리가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2025년 4월에 2.58%였던 한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12월에는 3.4%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고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는데도 장기 금리는 오히려 급등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금리 역설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는
시장의 불신이 가격에 반영된 것입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한국은행이 단기 RP로 돈을 무한정 공급하고, 심지어 국고채 단순 매입
까지 나서면 자연스럽게 '저 나라 금융 시장에 뭔가 큰 문제가 있나'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돈이 이렇게 많이 풀리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그만큼 채권 투자자들은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를 인플레이션 프리미엄이라고 합니다. 인플레이션 프리미엄이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 가치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채권 투자자들이 명목 금리에 추가로 요구
하는 수익률을 말합니다.
결국 장기 국채 금리의 급등은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시장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환율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환보유고로 방어하며 1,470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이 진짜
위기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 지갑을 털어 좀비를 살리는 구조
여기서 저는 이걸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한국은행이 원화를 무더기로 찍어내면 원화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평생 모은 적금의 실질 구매력이 조용히 증발하는 겁니다. 성실하게 일한 사람의 노동 가치가 통화 희석이라는 방식으로 털리는
동안, 부실 PF 시행사와 이를 떠안은 금융사들은 한국은행 덕에 목숨을 유지합니다.
제가 경험적으로 느낀 건 이렇습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강동구 아파트는 평당 1억을 넘고, 마트 장바구니는 가벼워졌는데 계산대 숫자는 무거워졌습니다. 이게 다 연결된 문제였던 겁니다.
국민연금이 2026년부터 국내 채권을 추가 매입할 여력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보험료 수입 67조원 가운데 채권에 투입할 수 있는 비중은 전체의 1% 안팎에 불과합니다. 80조원 규모의 유동성 효과를 국민연금 수백억으로 막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또 한 번의 응급처치가 아닙니다. 2022년에 해야 했던 구조조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것, 그리고 원화 가치를
지키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재정 원칙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경제적 의사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