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경제 공동체가 된다면 어떨까요? 듣자마자 "말이 되는 소리야?"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도 처음엔 똑같이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이야기가 재계와 학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IMF가 발표한 2026년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1인당 GDP는 37,412달러, 대만은 42,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이 숫자들을 보면서 이 논의가 왜 지금 나오는지, 그리고 정말 현실성이 있는지 직접 따져봤습니다.
경제 통합 논리, 들어보니 그럴 듯하긴 한데
일반적으로 한일 경제 협력이라고 하면 FTA(자유무역협정) 수준의 관세 인하 정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여기서 FTA란 두 나라 간 무역 장벽을 낮춰 상품과 서비스의 교류를 자유롭게 하는 협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재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그 수준을 훨씬 넘습니다. EU(유럽연합)의 솅겐 조약처럼 비자 없이 이동하고, 무관세 교역은 물론 공동 에너지 구매까지 포함하는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입니다.
논리 자체는 꽤 정교합니다. 제가 직접 내용을 살펴보면서 가장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부분은 에너지 공동 구매 이야기였습니다. LNG(액화천연가스)의 글로벌 수입 시장에서 일본은 약 16%로 2위, 한국은 약 11%로 3위입니다. 이 두 나라가 공동 구매에 나서면 점유율이 27%로 올라가 세계 최대 수요처가 됩니다. 협상력이 커지면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이는 고비용 구조를 가진 양국 경제에 직접적인 이득이 됩니다.
인재 유치 측면도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한국 대기업의 평균 임금은 일본보다 약 15% 이상 높고, 반도체 같은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이 임금 격차를 활용해 일본의 고급 인재를 유치하고, 반대로 취업 기회가 부족한 한국
청년에게는 일본 기업 취업 경로를 열어주자는 그림입니다. 한일 양국 합산 GDP가 약 6조 달러로, 미국·EU·중국에 이은 세계 4위 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라는 공통 위기도 이 논의를 밀어붙이는 배경입니다. 주요 37개국 중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1위)이고 일본(2위)입니다. 출산율이 낮으면 내수 시장이 필연적으로 쪼그라들고, 그렇게 되면 성장 공식 자체를 다시 짜야
합니다(출처: IMF). 내수 확대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두 나라가 시장을 합쳐 규모를 키우자는 논리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논의의 첫걸음으로 한일 양국 상공회의소가 공동 출범시킨 한일 저출산 대책 교류 위원회가 올해 8월 첫 심포지엄을 일본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위원회의 핵심 발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내수 시장 축소를 양국 통합으로 상쇄
- LNG 등 에너지의 공동 구매를 통한 협상력 강화
- 임금 격차를 활용한 인재 유동성 확대
- 반도체·첨단 산업·관광·의료 분야 분업 협력
저출산 공통 위기와 보호무역 장벽,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솔직히 이 논의를 처음 접했을 때 경제인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됐습니다. 시장이 두 배, 세 배로 커지는데 기업인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논의는 항상 경제 논리가 아니라 여론과 정치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머니투데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익이 있다면 역사 문제를 감수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응답이 한국은 59%, 일본은 38%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건 일본의 '모르겠다' 응답이 36%에 달했다는 점입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일본은 1억 명이 넘는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국민의 여권 보유율이 15%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외부 지향성이 낮은
사회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무관심이야말로 이 구상의 가장 큰 현실적 장벽입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론의 벽을 넘으려면 위기의식이 공유돼야 하는데, 일본 국민 다수는 그 위기의식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제 경험상 이런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반드시 등장하는 게 지정학적 리스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반도체 같은 핵심 산업이 잘 되면 다른 강대국이 가만두지 않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논리를 이 한일 경제 공동체
자체에 그대로 적용해 보고 싶었습니다. 공동체가 잘 돌아가기 시작하면,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외부 세력이 역사적 갈등을 자극하고 두 나라를 이간질하려 들지 않을까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두 나라를 갈라놓는 것은, 셋 다 같은 방향을 보는 동일한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한일 FTA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 회로도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할 인프라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서 CPTPP란 일본 주도로 출범한 다자간 무역 협정으로, 역내 관세 철폐와 투자 자유화를 핵심으로 합니다. EU가 육로로 연결된 데 반해,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전기 규격도 다르고, 언어 장벽도
여전합니다. EU처럼 영어를 사실상의 공용어로 사용하는 구조가 뿌리내리려면 교육 시스템부터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상품에 높은 관세나 수입 규제를 부과하는 정책인데, 지금 미국과 유럽이 바로 이 방향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수출 의존형 국가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출처: WTO). 이런 흐름이 이 논의를 부추기는 배경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적 어려움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KBO가 2026년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사례는 작은 축소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단은 비용 절감을
원하고, 현역 선수들은 일자리 축소를 우려해 반대합니다. 경제 공동체 논의에서 기업인들은 찬성하고 노동자들은 긴장하는 구도와 정확히 같습니다. 결국 경제 통합의 수혜가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핵심인데, 지금 논의는 그 부분이 아직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느낌입니다. 정리하면 이 논의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빠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 50년, 어쩌면 100년 스케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 직후 석탄·철강 통합에서 시작해 EU까지 오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 이 저출산 대책 심포지엄이 가진 의미는 '첫 씨앗'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경제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