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예정일 단 하루 전, 밤 10시 30분에 잠정 합의안에 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은행이 18일 총파업 시 GDP 성장률이 0.5%p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할 만큼 파괴력이 컸던 사안입니다. 합의 소식이 나오자마자 코스피는 하루 만에 600포인트 넘게 치솟았고, 삼성전자는 잠깐이나마 30만 원을 터치했습니다.
성과급 구조, 숫자로 뜯어보면
이번 합의의 핵심은 기존 OPI에 DS 부문 특별 경영 성과급을 추가하는 구조입니다. OPI(Operating Performance Incentive)란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직원에게 지급하는 기존 성과 인센티브 제도로, 대략 영업이익의 1.5% 수준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DS 부문 특별 경영 성과급 10.5%가 더해지면서, 최대 합산 약 12%라는 수치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겁니다.
구체적인 배분 방식도 복잡합니다. 성과급 재원 전체를 부문에 40%, 사업부에 60%로 나누고, 공통 조직은 메모리 사업부 지급률의 70%를 기준으로 삼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숫자를 넣어 계산해봤는데, 삼성전자가 올해 사업 성과 기준으로 300조 원을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성과급 재원만 31조 원이 나옵니다. 이를 인원수로 나누면 메모리 사업부 기준 약 6억 원, 공통 조직은 약 4억 8천만 원, 시스템 반도체 및 파운드리 사업부는 약 2억 1천만 원 수준이 됩니다. 물론 예시 기반의 추정치이고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성과급은 세후 전액을 자사주로 지급하며, 지급된 주식의 1/3은 즉시 매각 가능하고 나머지는 1년, 2년씩 의무 보유해야 합니다. 단순히 현금 보상이 아니라 주주로서 회사 성과에 장기적으로 묶이는 구조입니다. 이번 제도는 DS 부문에 향후 10년간 적용되며, 2027년부터 2028년까지는 DS 부문 영업이익 200조 원 이상, 2028년부터 2035년까지는 100조 원 이상을 달성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DX 부문, 즉 스마트폰·가전·TV 담당 직원들에게는 기존 OPI에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가 추가 지급된다는
겁니다. 메모리 사업부와 최대 10배 가까운 격차가 발생하는 구조여서, 합의 이후 DX 부문 직원들을 중심으로 부결 운동이
일어나고 조합원 수가 하루 만에 수천 명씩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현재 삼성전자 전체 직원 수는 약 12만 8천 명
수준입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핵심 성과급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DS 부문(반도체): OPI 1.5% + 특별 경영 성과급 10.5%, 최대 약 12% 합산
- 메모리 사업부: 부문 공통 성과급 + 사업부 추가 성과급 별도 지급
- 파운드리·시스템 LSI 사업부: 부문 공통 성과급만 적용, 사업부 추가 성과급 없음
- DX 부문(스마트폰·가전): 기존 OPI + 자사주 600만 원 추가
파운드리 차별이 남긴 진짜 리스크
솔직히 이 부분이 제가 가장 걱정되는 지점입니다. DS 부문 안에서도 메모리와 파운드리·시스템 LSI 사업부 사이의 성과급 격차는 구조적인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현재 적자 상태입니다. 이번 합의안에서 파운드리는 부문 공통 성과급만 받고 사업부 추가 성과급은 받지
못합니다. 동년차 기준으로 올해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이의 성과급 격차가 3배라면, 내년에는 6배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제 주변 파운드리 연구원들의 반응도 비슷합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이라는 제품입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그런데 이 HBM을 만들려면 베이스 다이(base die)가 필요합니다. 베이스 다이란 HBM 구조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로직 칩으로, D램 스택 전체의 신호를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 이 베이스 다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입니다. TSMC는 경쟁사 삼성에 베이스
다이를 만들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삼성 HBM의 베이스 다이는 삼성 파운드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파운드리 선단 공정 연구원들, 특히 석박사급 핵심 인력이 이탈하거나 태업 수준의 소극적 근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제 경험상 이건 예상보다 빠르게 체감됩니다. 당장 HBM4 베이스 다이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라 2~3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파운드리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차세대 HBM 개발에 필요한 기술 역량이 서서히 무너집니다. 사측이 협상에서 단기 실리를 취하는 과정에서 중장기 기술 경쟁력의 뿌리를 흔든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글로벌 경쟁력과 기술 인력 유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산업연구원(KIET)도 반도체 인력 생태계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출처: 산업연구원).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합의 자체보다 파급 효과를 우려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HD현대중공업, 카카오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성과급 요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성과급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산업 전반으로 번지면, 결과적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화된 집단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습니다.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고용 구조 위에서 이런 관행이 반복된다면, 성과와 보상의 연결 고리는 점점 더 느슨해집니다.
잠정 합의안 투표는 조합원 과반 참여와 과반 찬성이 조건으로, DS 부문 조합원 비중이 높기 때문에 통과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입니다. 다만 최종 결과는 투표가 끝나봐야 압니다.
삼성전자가 이번 합의로 파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습니다. 하지만 파운드리 인력 유출과 HBM 기술 경쟁력 약화라는
더 조용하고 더 위험한 리스크가 서서히 쌓이고 있는 건 아닐지, 3년 뒤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과급 구조를 설계할 때는
당장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만큼이나, 어떤 인력이 어디서 남고 어디서 떠나는지를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건 숫자보다 그 이면의 구조를 보는 눈인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또는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