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동구 강일리버파크와 고덕리엔파크 장기전세주택 입주민들의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 이른바 시프트는 무주택 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주변 전세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공공임대주택 제도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입주한 일부 장기전세 입주민들이 2027년부터 만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재 시세 10억 원가량의 집에서 보증금 3억 원 정도를 돌려받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서울시에 재계약 연장이나 분양전환, 금융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20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야 한다는 현실이 개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아이를 키우고, 이웃과 관계를 맺고,
생활권이 모두 그곳에 맞춰져 있었다면 마음이 복잡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특히 지금처럼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보증금 3억 원만 가지고 같은 지역에서 다시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기간이 있었던 장기전세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를 믿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한다”는 식의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전세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내고 거주하는 계약이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라면
전세 제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일반 전세도 2년 계약이 끝나면 집주인과 조건을 다시 협의해야 하고,
계약 연장이 되지 않으면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하물며 장기전세는 애초에 ‘최장 20년’이라는 기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전세 세입자들과 비교하면 매우 긴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던 셈이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은, 이들이 그동안 서울의 좋은 입지에서 시세보다 훨씬 낮은 보증금으로 장기간 거주해 왔다는 점이다. 20년 동안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한 혜택이었다.
그 혜택을 누린 기간이 끝났을 때 다시 또 재계약을 보장해 달라거나 감정가 기준으로 분양전환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무주택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혜택은 인정하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지금도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높은 전세금과 월세를 감당하며 2년마다 이사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기 위해 여러 번 신청해도 탈락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낮은 비용으로 거주한 사람들이 “더 살게 해달라”, “분양전환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장기전세주택은 분양전환을 전제로 한 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입주민들도 처음부터 언젠가는 계약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말은 “20년 후에도 계속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안정적인
거주 기간을 보장해 준 것이지, 영구 거주권이나 소유권을 약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가 만기 도래 세대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이 한꺼번에 퇴거만 요구하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닐 수 있다.
갑작스러운 주거 불안을 줄이기 위해 이주 상담, 저리 대출, 다른 공공임대 연계 같은 최소한의 지원책은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미 정해진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우리가 오래 살았으니 계속 살 권리를 달라”는 식의 요구는 조심해야 한다. 공공주택은 특정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또 다른 무주택 시민들을 위한 자원이기도 하다.
한 번 입주한 사람이 계속 머물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회는 줄어든다.
나는 이번 논란을 보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계약의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전세든 장기전세든, 처음 정해진 조건과 기간이 있다면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20년 동안 저렴한 보증금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혜택이었다. 이제 만기가 다가왔을 때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추가 혜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혜택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이주 대책을 준비하는
태도라고 본다.
정부를 믿었다는 말이 모든 요구를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정부가 보장한 것은 ‘최장 20년 거주’였지, ‘평생 거주’나 ‘분양전환’이
아니었다. 전세가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맡기고 사는 제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기간의 끝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공공정책은 따뜻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정해야 한다. 이미 혜택을 받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예외를 만들어 주는 순간, 그 부담과 불공정은 결국 다른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번 장기전세 논란이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로 끝나기보다, 계약의 원칙과 주거복지의 균형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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